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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어떤 사람에게 선을 잇고 어떤 언어에 줄을 그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다
세상의 많고 많은 말들 중에 내가 밑줄을 그은 말들이 나의 언어가 된다
우리 모두는 시간 앞에서 유일한 존재들이다
내가 가진 시간의 양이 목숨이다
그러므로 내가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고 있다는 말은 내 목숨의 일부를 내주고 있다는 의미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을 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도 내 목숨이 사용된다
그래서 인생에서 시간은 어느 것에 더 목숨을 소비하고 사용했느냐의 결과를 말한다
나는 믿는다는 말의 속뜻을 헤아려보았다
약속을 지켜라, 기대를 저버리지 마라, 실망시키지 마라, 내 뜻을 거스르지 마라, 기필코 해내라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이토록 숨 막히는 말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버젓이 해대고 있었다
얼마나 될까? 확실한 진실들이, 분명한 이유들이
그걸 다 말할 수 없어 어떤 이들은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어떤 이들은 그만 입을 다물어버린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일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숨은 뜻을 찾아 순례를 떠나고,
어떤 이들은 은유법을 배워 시를 쓰고, 어떤 이들은 눈물바다를 응고시켜 소금을 만든다
나는 납득되는 슬픔일 수 있게 들키는 삶이기를 바란다
죽음의 단서를 흘리는 삶 혹은 이별의 징후를 예감하게 하는 삶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대로, 용서할 수 없으면 용서할 수 없는 대로
죽음도 삶의 일부이므로 내게 와준 삶에 예의를 다해 나를 설명해두려고 한다
내가 어떤 언어를 사랑했는지, 어떤 기억으로 아프고 기뻤는지,
어떤 환상을 좇았는지, 어떤 빛이 되고 싶어 했는지
사람은 자신의 운명으로 사는 게 아니다
타인의 가슴속에서 죽으면 죽는다
목숨의 길이는 생명 공학 기술에 달려 있을지 모르지만 목숨의 깊이는 사랑의 화학에 달려 있다
누군가 당신을 흔드는 말을 한다면, 마음 깊은 곳에서 천둥소리가 들린다면 그것은 다른 목숨 하나가 결합을 시도한 것이다
떨림이 있고 울림이 있고 열이 나고 빛이 난다면 의심할 바 없다
그것은 분명하고 진짜다
마음 한 줌을 얻지 못하면 백 마디 아름다운 말이 내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인생은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마음, 하지 않는 말에 진면목이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서 좋아하는 무엇을 하는 만큼, 싫어하는 무엇을 하지 않는 것
모양을 바꾼다고 존재의 본질이 바뀌진 않는다
우리가 안개라고 운해라고 구름이라고 부르는 수증기 덩어리들은 모양만 다를 뿐 생성 원리나 본질이 같다
지상에 낮게 깔려 있는 구름이 안개이고, 산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구름 무리가 운해다
내가 무엇으로 사는가,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할 일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보라는 뜻일 테다
구름이 그렇듯이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으로 불리든 나는 고스란히 나다
당신은 많은 아름다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당신이 잊은 것 같다
당신 아닌 그 모든 것들로 자신을 정의하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는
- 에린 핸슨, 아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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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림태주 시인의 책을 읽게 되었다
가끔 우연히 만난 책이, 우연히 읽은 한 문장이 나를 살게 하기도 한다
그의 글들이 나를 더 발견하게 하고, 배우게 하고, 한 줌 더 기쁘게 살도록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림태주 시인의 모든 책을 서재에 담았다
멋진 책을 만난 황홀함만큼, 멋진 작가를 알게 되어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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